지난번 커피나무가 자라는 환경에 대해 잠시 살펴보셨죠? 오늘은 그 다음 단계인 '커피 열매의 수확 과정과
가공과정'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붉게 익은
커피 체리가 우리 손에 들어오는 원두가 되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치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커피 체리, 언제 수확해야 가장 좋을까?
커피나무는 씨앗을 심은 후 보통 3~5년이 지나야 첫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또는 지역에 따라 두 번) 수확이 이루어지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수확 시기'**입니다.
- 잘 익은 체리: 앵두처럼 붉고 탐스럽게 잘 익은 체리를 수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덜 익은 체리는 풀 비린내가 나거나 떫은맛을 내고, 너무 익어버린 체리는 과발효되어 좋지 않은 향미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지역별 차이: 수확 시기는 재배 지역의 기후에 따라 달라집니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곳은 한 번에 수확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여러 번에 걸쳐 수확하기도 합니다.
커피 체리, 어떻게 수확할까? 세 가지 주요 방법
커피 체리를 수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며, 이는 커피의 품질과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1. 핸드 피킹 (Hand Picking): 한 알 한 알의 정성
- 특징: 농부들이 잘 익은 붉은색 커피 체리만을 손으로 직접 골라 따는 방식입니다. 가장 전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방법이죠.
- 장점: 미숙과(덜 익은 열매)나 과숙과(너무 익은 열매)가 섞이지 않아 최고 품질의 균일한 커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농장에서 주로 이 방법을 고수합니다.
- 단점: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어 생산 단가가 매우 높습니다. 수확량이 적고 경사가 심한 지역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2. 스트리핑 (Stripping): 가지를 훑어내는 효율성
- 특징: 나무 가지를 손으로 훑어내려 익었든 안 익었든 모든 커피 체리를 한꺼번에 따는 방식입니다. 바닥에 천을 깔아놓고 떨어지는 체리를 모으기도 합니다.
- 장점: 핸드 피킹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입니다.
- 단점: 잘 익은 체리뿐만 아니라 덜 익거나 너무 익은 체리, 심지어 나뭇잎이나 가지까지 함께 수확되기 때문에 수확 후 선별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품질 관리가 핸드 피킹보다 어렵습니다.
3. 기계 수확 (Mechanical Harvesting): 대규모 농장의 자동화
- 특징: 대규모 평지 농장에서 특수 제작된 기계를 이용하여 커피 체리를 한 번에 수확하는 방식입니다. 기계가 커피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리거나, 가지를 훑어내려 수확합니다.
- 장점: 매우 효율적이며, 엄청난 양의 커피를 짧은 시간에 수확할 수 있어 인건비를 크게 절감합니다.
- 단점: 기계는 체리의 익은 정도를 구분하지 못하므로, 수확된 체리 중 미숙과나 과숙과가 섞일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품질 균일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주로 대량 생산되는 상업용 커피에 적용됩니다.
수확 이후: 가공의 첫 단계
이렇게 수확된 커피 체리는 곧바로 다음 단계인 **'가공(Processing)'**을 거치게 됩니다. 체리 상태로 오래 두면 과발효가 일어나
맛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가공 과정을 통해 체리의 과육을 제거하고, 우리가 아는 초록색의 **'생두(Green Bean)'**를
얻게 됩니다. 가공 방식(건식, 습식 등)에 따라서도 커피의 최종적인 맛과 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왜 '가공'이 필요할까?
수확된 커피 체리 안에는 우리가 로스팅하여 마시는 **'생두(Green Bean)'**가 과육과 점액질에 싸여 있습니다. 이 과육과 점액질을 제거하지 않으면 커피콩이 상하거나 발효되어 맛을 버릴 수 있죠. 따라서 체리에서 생두를 분리하고 건조시키는 가공 과정은 커피의 품질과 최종적인 맛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공 방식은 크게 **건식 가공(Dry Process/Natural Process)**과 습식 가공(Wet Process/Washed Process),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장점을 섞은 세미-워시드(Semi-Washed) 또는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건식 가공 (Dry Process/Natural Process): 태양의 선물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주로 물이 부족하거나 기후가 건조한 지역(브라질, 에티오피아 일부)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 과정:
- 세척 및 이물질 제거: 수확한 커피 체리에서 나뭇잎, 흙 등 이물질을 간단히 제거합니다.
- 건조: 체리 상태 그대로 **넓은 건조장(파티오, Drying Beds)**에 펼쳐 놓고 태양열과 바람으로 2~4주 동안 건조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체리를 주기적으로 뒤집어주어 고르게 마르도록 하고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합니다.
- 탈곡 (Hullling): 건조가 완료되어 바싹 마른 체리(파치먼트 포함)를 기계에 넣어 과육, 껍질, 파치먼트 등을 한 번에 벗겨내면 생두가 나옵니다.
- 커피 맛의 특징: 과육의 당분과 점액질이 건조 과정에서 생두로 스며들어, 단맛과 바디감이 풍부하고 과일 향, 베리 향, 잼 같은 향미가 특징입니다. 때로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독특한 와이니(Winey)한 향미나 내추럴 특유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2. 습식 가공 (Wet Process/Washed Process): 깨끗하고 섬세한 맛
물을 많이 사용하여 체리의 과육을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주로 물이 풍부하고 습기가 많은 지역(콜롬비아, 중미, 아프리카)에서 고급 아라비카 커피에 많이 사용됩니다.
- 과정:
- 수조 투입 및 선별: 수확한 커피 체리를 커다란 수조에 넣으면 잘 익은 체리는 가라앉고, 덜 익었거나 불량한 체리는 뜨게 됩니다. 이물질과 함께 골라내어 1차 선별을 합니다.
- 과육 제거 (Pulping): '펄퍼(Pulper)'라는 기계를 이용해 체리의 껍질과 과육을 벗겨냅니다. 이때 생두를 둘러싼 끈적한 점액질(뮤실리지)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발효 및 점액질 제거 (Fermentation & Mucilage Removal): 과육이 제거된 생두를 물이 담긴 발효조에 넣고 12~36시간 동안 발효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효소들이 점액질을 분해하여 미끈거림이 사라집니다. 발효가 끝나면 깨끗한 물로 생두를 깨끗이 씻어 점액질을 완전히 제거합니다. (이때 물을 많이 사용합니다.)
- 건조: 점액질까지 제거된 생두(파치먼트에 싸인 상태)를 건조장(파티오, 아프리칸 베드 등)에 펼쳐 놓고 태양열이나 기계식 건조기로 건조시킵니다. 수분 함량이 10~12%가 될 때까지 말립니다.
- 탈곡 (Parching Removal/Hulling): 완전히 건조된 생두(파치먼트에 싸인 상태)를 탈곡기에 넣어 파치먼트를 벗겨내면 우리가 아는 생두가 나옵니다.
- 커피 맛의 특징: 과육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커피 본연의 깨끗하고 깔끔한 맛, 밝고 선명한 산미, 섬세하고 복합적인 향미를 강조합니다. '클린 컵(Clean Cup)'이라고 표현되는 투명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세미-워시드/펄프드 내추럴 (Semi-Washed/Pulped Natural): 두 방식의 조화
건식과 습식의 중간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많이 개발되고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 과정:
- 과육 제거 (Pulping): 습식 가공처럼 먼저 기계로 체리의 껍질과 과육을 벗겨냅니다. (발효 과정은 거치지 않습니다.)
- 건조: 과육은 벗겨냈지만 점액질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의 생두를 바로 건조장에 펼쳐 놓고 태양열로 건조시킵니다. 점액질이 생두에 스며들면서 마르게 됩니다.
- 탈곡 (Hullling): 건조가 완료되면 탈곡기를 이용해 점액질과 파치먼트를 한 번에 벗겨냅니다.
- 커피 맛의 특징: 건식 가공보다는 깔끔하면서도, 습식 가공보다는 단맛과 바디감이 더 풍부한 것이 특징입니다. 균형 잡힌 맛과 부드러운 산미를 선호하는 시장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가공 이후의 단계들: 파치먼트, 생두, 그리고 분류
가공을 마친 커피는 바로 생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선별과정을 거칩니다.
- 파치먼트(Parchment): 습식 가공 후 건조를 마친 생두는 얇은 껍질(파치먼트)에 싸여 있는데, 이 상태로 보관하면 안정성이 더 높아집니다.
- 생두 (Green Bean): 파치먼트를 벗겨낸 상태의 커피콩으로, 우리가 로스팅하기 전의 원재료입니다.
- 분류 및 결점두 제거: 가공이 끝난 생두는 크기별로 분류되고, 벌레 먹거나 깨지거나 색깔이 변한 '결점두'들을 꼼꼼하게 골라냅니다. 이 과정 역시 최종 커피 품질에 매우 중요합니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커피나무가 자라는 자연환경의 영향, 그리고 수확 방식과 그 과정에 담긴
농부들의 땀과 정성이 더해져 비로소 완성됩니다. 특히 핸드 피킹으로 수확된 스페셜티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는,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노력과 섬세한 손길을 떠올려보는 것도 커피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기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커피 한 잔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는 수확의 정성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지혜가 결합된 복잡하고 섬세한 '가공 과정' 또한
숨어있습니다. 각 가공 방식이 커피의 맛과 향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면, 같은 산지의 커피라도 어떤 가공법을 거쳤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풍미를 더욱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렇게 가공된 생두가 드디어 우리가 마시는 커피가 되기 위한 마지막 여정, **'로스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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