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스며든 검은 물결, 한국 커피의 첫 만남

반응형

오늘은 우리가 매일같이 즐기는 커피가 과연 언제,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통해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뎠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지금처럼 흔하게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아편 전쟁의 여파, 그리고 커피의 동방 진출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오던 19세기 말, 조선은 '은자의 나라'라는 별칭처럼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구 열강들의 압력과 개방의 물결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죠. 이 시기에 커피 역시 서양 문물과 함께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커피가 아시아로 전파된 것은 17세기부터였지만,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서구식 커피 문화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였습니다. 특히 아편 전쟁 이후 청나라와 일본이 서구에 개항하면서 서구 열강의 상인, 선교사, 외교관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을 통해 커피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각지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조선 역시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커피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고종 황제, 한국 커피의 첫 테이스터?

그렇다면 과연 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맛보았을까요? 한국 커피 역사의 첫 잔은 고종 황제에게로 향합니다.

고종 황제는 개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함께 커피는 고종 황제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게 됩니다.

1896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잃은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관파천'인데요, 고종 황제는 이곳에서 1년여간 머물면서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그의 아내 손탁(Sontag) 여사와 교류하게 됩니다.

손탁 여사는 러시아 공사관의 살림을 맡아보며 외교관들을 접대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때 고종에게 서양식 차와 함께 **'가배(加琲)' 또는 '가배차(加琲茶)'**라고 불리던 커피를 대접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생소한 이 검고 쓴 음료는

고종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을지 모르나, 고종은 곧 커피의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맛에 매료되었고,

이후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가 커피를 처음 마셨다는 설은 여러 가지 기록과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아관파천 이후 덕수궁으로 환궁한 뒤에도 커피를 계속해서 즐겼으며, 심지어 덕수궁 내에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을

짓고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교관들을 접견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의 커피 사랑을 더욱 확실하게 뒷받침합니다.

정관헌은 서양식 건축 양식과 한국의 전통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된 건물로,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커피의 확산, 그리고 '다방'의 탄생

고종 황제의 커피 사랑은 점차 궁궐 안팎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고종의 총애를 받던 손탁 여사는 1902년, 덕수궁 맞은편에

**'손탁 호텔'**을 짓고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자 **최초의 커피숍인 '정동구락부' 또는 '손탁빈관다방'**을

개설합니다. 이곳은 외교관, 상인, 그리고 신문물을 접하고 싶어 하는 개화기 지식인들의 사교 장소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곳에서 커피는 단순히 음료를 넘어, 서구 문물과 사상을 교류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커피는 '다방'이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더욱 가까워집니다. 명동, 종로 등 도심에 다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곳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예술가, 문인, 지식인들이 모여 문학 논쟁을 벌이고 새로운

사상을 논하던 문화 살롱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상, 김유정 등 수많은 문인들이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구상하고

토론을 벌였다는 일화는 당시 다방의 문화적 중요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초기에는 커피가 비싼 고급 음료였기에 쉽게 접하기 어려웠지만, 다방의 확산과 함께 점차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커피는 꿋꿋이 자리를 지켰고, 특히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

커피는 전쟁 후의 어려운 시절, 한국인들에게 빠르고 간편한 '달콤한 위안'을 선사하며 국민 음료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커피에 진심이었던 고종황제"

 

 

커피, 단순한 음료를 넘어선 역사적 의미

고종 황제로부터 시작된 한국 커피의 역사는 단순한 음료의 도입을 넘어, 시대의 변화와 근대화의 흐름을 반영합니다. 서구 문물에 대한 호기심, 외교의 도구, 지식인의 사교 공간, 그리고 전쟁 후 서민들의 위안까지, 커피는 우리 역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함께하며 그 의미를 더해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커피 소비국이자,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꽃피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카페, 그리고 집에서 직접 원두를 갈아 내려 마시는 홈카페 문화까지, 커피는 이제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고종 황제가 처음 맛본 '가배' 한 잔이 이렇게 거대한 커피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커피 한 잔에

담긴 우리의 역사를 되새기며,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언제 처음 커피를

맛보셨나요?

처음 커피의 맛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다음번에는 또 다른 커피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커피처럼...

반응형